뭔지 모를 초록빛 물체에 둘러 쌓여있는 나는 오늘도 내 앞에서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인간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있는 곳은 어두운 방. 그리고 그 중심에 위치한 투명한 무언가에 담겨져 있는 나.
내가 이렇게 생각 할 수 있을 때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맨 처음 내가 눈을 떴을 때. 머릿속에 '답답하다'라는 말이 맴돌았다.
'답답하다'...? 이건 무슨 말일까. 아니 애초에 말이란게 무엇이지? 나는 어째서 저런 걸 알고 있는 걸까?
그런 질문을 되풀이 하며 나는 곧 다시 잠에 빠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지난지는 모른다. 다만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답답하다'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질문이 끊기질 않았다.
'답답하다'라는 것에 대한 온갖 설명들과 관련된 단어들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고 나는 그것들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잠에 빠졌다.
그 뒤로 나는 눈을 뜰 때마다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와 말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되풀이 하였고
몇가지 발견한 것이 있었다.
우선 나는 기본적인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이곳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가 없었다.
즉 배경적인 지식이 없다는 것이 였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이곳이 어둡다는 것은 알고 있는. 그런 상태였다.
그렇기에 나는 배경적인 지식을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였다.
애초에 기본지식도 머릿속에 맴도는 것을 끊임없이 질문을 되풀이하며 그 뜻을 알아가는 작업으로
알아냈지만, 이 배경지식은 생각할 단서조차 없었다.
그리고 이 기본지식을 끊임없는 질문으로 알아가던 중 무언가 배경지식을 알만한 단어를 발견했지만
그 즉시 나는 잠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나는 배경지식과 관련된 모든것을 잊어버리고 기본지식만
내 머릿속에 잠자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지금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슨 언어인지 아니면 무슨 수단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 그저 본능으로만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왠만해선 잠에 빠지지 않는다. 시간에 대한 감각이 없기 때문인지 잠을 자는 간격도 알 수 없었고
그저 이렇게 좀 더 지식을 발굴하는 작업(끊임없는 질문)을 할 뿐이였다.
이런 나의 상태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투명한 무언가의 얼굴을 보이는 한 여자로 인해 이루어졌다.
지이이잉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어온 것은 연구실장 '카이네린 다이란스'이였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마법적 연구에 대한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 일찍이 마도국(魔道國)의 영재(靈材)교육기관인
'포리온'아카데미를 수석 졸업한 인재였다. 또한 그녀의 아버지 '쿠이혼 다이란스'는 마도국의 육군 총사령관을
담당하고 '제 2차 파이톤 전쟁'에서 큰 실적을 올린 명장이였다.
그런 그녀는 지금 연구실 중앙에 위치한 캡슐 속 '무언가'를 관찰 하고 있었다.
"흐음....'이거'...눈 떴네?"
그녀는 시선을 '무언가'에 고정시킨 채 자신의 뒤에 멀뚱멀뚱 서있는 보좌관 '바세드 지하스'에게 물었다.
"에...눈을 뜬지 약 1632시간 지났습니다. 눈을 뜬 것 이외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심지어 눈도 깜박이질 않더군요."
바세드는 과하게 뒤로 빠진 그녀의 엉덩이를 어떻게 하고 싶었으나 차마 말하지 못하고
시선을 앞으로 고정시킨 채 말했다. 그리고 왼손에 들고있던 보고서에 눈길을 주었다.
"1632시간을 깨어있었으나 산소의 공급은 없었고 온도도 변하지 않았고 배설물 조차 없었습니다."
"흐음...인형...인가? 그럼?"
숨을 쉬지도 않고 온도도 일정하며 배설물 조차 없었다....그렇다면 이건 생체활동을 정지한 것 인가?
물론 그렇다고 하기에는 '저것'의 심장이 뛰고 있으니 그건 아닐테고 말이다. 또한 인형이라기엔
체온이 너무 높고 말이다.
톡톡
"어이~ 깨있는거야?"
그녀는 캡슐에 노크를 하는듯한 동작으로 말을 걸었으나 역시나 반응은 없었다.
바세드는 그녀에게 보고서를 건네며 말을 하였다.
"이건 1632시간 동안의 보고서 입니다. 그리고 '저것'을 자극할 만한 행동은 삼가해주시길 바랍니다.
카이네린 연구실장님."
"우우....바세드는 너무 냉정하단 말이야. 그렇지? 셰릴?"
한쪽에서 반투명한 화상 키보드로 작업을 하던 셰릴은 카이네린의 부름에 열심히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대답하였다.
"바세드가 냉정하기 보단 연구실장님이 너무 산만한거라고 생각합니다만...우아아앗"
셰릴은 말하는 도중 자신의 관자놀이를 주먹으로 비비는 징벌을 가한 카이네린으로 인해
고통에 몸부림 쳤다.
"후우...내가 너무 애들을 풀어준걸까..? 어떻게 생각해?"
그녀는 캡슐 앞 까지 걸어가서 그 안에 있는 '그것'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반응이 돌아올리가 없기에 그녀는 홱 몸을 돌려 들어왔던 입구로 나갔고
바세드는 묵묵히 그녀를 따라갔다. 고통에 몸부린 치던 셰릴도 투덜투덜 불만을 터트리고는
다시 작업에 열중 하였다. 그리고 다시 어두운 조명만이 비치고 있는 연구실은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만이 울리고 있었다.
나는 내가 눈 뜬 이래로 처음으로 내 앞에서 말을 걸어준 한 인간을 보았다.
마치 내가 알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듯 말을 걸어오는 인간은 매우 아름다웠다.
금발에 청안을 한 인간은 내 앞에서 입을 열었고 나는 그것을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어이~ 깨있는거야?'
'후우...내가 너무 애들을 풀어준걸까..? 어떻게 생각해?'
나는 어째서 이 말을 알아 들을 수 있는 걸까? 나는 어떻게 이 언어를 알고 있는 걸까?
나는 이 언어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없기에 어떻게 알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했다.
그리고 새로운 다빙 나왔다. '차원통합어'. 이것을 떠올리고 나는 다시 잠이 오기 시작했다.
이 증상은 분명 새로운 단어. 즉 새로운 지식을 찾았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였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지식을 찾게 되었고 언제 깰지 모르는 잠에 빠진다.
나에게 '언어'를 준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다.
"안녕~ 오랜만인가?"
"눈을 뜬 후 약 2000시간이 지난 현재.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2일 만에 연구실을 다시 찾은 카이네린은 분명 아무런 반응조차 없는 캡슐안 '그것'에게 말을 걸었고
바세드는 약 368시간 분량의 보고서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성과가 있었는지 셰릴이 다가왔다.
"연구실장님. 여기."
그녀가 건넨 종이에는 캡슐 안 '그것'에 대한 자료가 들어있었다.
일단은 생물 이라는 것. 비록 아무런 움직임은 없지만 심장은 아직 뛰고 있고
본능인지는 몰라도 주위에 마력(魔力)을 조금씩이나마 흡수한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수(靈獸)일지도 모른다는 보고였다.
"영수? 흐음...넌 어떻게 생각해? 네가 영수라는데?"
카이네린은 셰릴의 보고서를 훑어보고 캡슐 안 영수일지도 모르는 '그것'에게 말을 걸었다.
"아~ 그리고 '그것'말인데요. 이름은 안붙이나요?..."
"이름?"
"예...아직 이름도 안붙이고 그간 '그것'이라든지 '이것','저것'이라고 불렀으니.."
"흐음....일단 생물체로 판별했으니..역시 이름은 있어야겠지?"
그녀는 잠시 초록빛 마력안정제에 담겨있는 '그것'을 잠시 관찰하였다.
분명 지금까지 수없이 보았음에도 막상 이름을 붙인다니 뭔가 새롭게 보인다.
검은색이 베이스에 붉은색 브릿지가 섞인 털.
약간 뾰족한 늑대와 같은 귀.
그리고 붉은색 눈동자를 지닌 마치 늑대와 같은 모습을 지닌 '그것'.
아직은 전체적으로 작아서 그렇지 만약 성장한다면 굉장히 위압감이 있게 느껴 질 것이다.
그런 모습을 지는 '그것'에게 어울리는 이름 따위 그녀는 알지 못한다.
단지 자신의 머릿속에 번뜩 스쳐지나가는 이름.
"..트...레넌. 트레넌이다. 이녀석은."
그녀는 그렇게 이름을 짓고 붉은색 눈동자를 지닌 '그것'아니 트레넌이 있는 캡슐을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트레넌...이로군요."
바세드는 그녀의 말을 다시금 재확인 하였다.
연구실장인 그녀가 발견하고 연구한 이 실험체의 이름이 마침내 결정된 것이다.
'트레넌'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이제 이 캡슐의 아랫쪽에 위치한 이름을 나타내는 공간이 채워질 것이다.
그녀가 지은 그 이름으로.
"..트...레넌. 트레넌이다. 이녀석은."
나는 인간이 나의 앞에서 영수라는 말과 내 이름을 짓는 다는 말을 하자
'심장'이라는 곳의 박동이 빨라짐을 느꼈다.
무엇일까 이 느낌은. 이 감정은. 이 현상은.
그리고 인간이 나의 이름을 정했다.
트레넌.
지금까지는 움직일려고 해도 움직이지 않던 나의 '몸'. 그래서 포기하고 있던 그 움직임이
이 말을 듣는 순간 멋대로 움직일려고 한다. 그리고 이내 나 스스로가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내 '몸'을 움직여 내 앞에 있는 그녀의 손에 맞대었다.
투명한 무언가가 가로막는 듯한 느낌이 '몸'에 전해졌다.
하지만 그 가로막는 느낌 너머로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한 느낌이 전해진다. 이것은 뭘까 그리고 이 인간은 누구일까?
굉장히 아름답고 따스한 느낌을 주는 인간.
나와 그녀의 만남은 이제 시작되었다.


